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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현 원장 칼럼] 의료용 마약류 사용의 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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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24-04-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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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약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약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약은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을 말한다. 다른 뜻으로 마약, 아편, 술 따위를 빗대어 이르는 말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영미권에서도 마찬가지다. drug라는 영어 단어는 의약품이라는 뜻도 가지지만 불법적인 약물, 마약의 뜻을 담고 있다. 의약품과 마약, 다른 듯 하지만 뭔가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약리학 교과서의 서두 내용을 살피다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모든 약은(혹은 물질은) 특정 상황에서는 독성을 띌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약은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의약품과 마약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의료용 마약류’는 바로 의약품과 마약의 교차 지점에 있다. 본 글에서는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점검하고 위험성을 살피며 이를 신중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용 마약류란 무엇인가?

의료용 마약류란 마약류로 분류되는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중에서 의약품의 용도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것들을 말한다. 즉, 의료용 마약류는 의료용으로 쓰이지만 신체적 또는 정신적 의존성을 작게 혹은 크게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다. 쉽게 말하면 중독성이 있는 의약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독(中毒)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영어 단어 intoxication의 의미로 특정 물질로 인해 기억력, 지남력, 기분, 판단, 행동, 사회 혹은 직업적 기능 중 하나 이상의 정신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가역 증후군이다. 다른 하나는 영어 단어 addiction의 의미에 해당하는 특정 물질의 반복적이고 증가된 사용으로 그 물질이 부족할 경우 증상으로 인한 고통과 저항하기 어려운 충동이 발생하고 신체적, 정신적 악화를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1) 이 두 가지 중독의 뜻을 풀어보면 중독성이 있는 물질에 노출되는 그 자체가 고통을 유발할 수 있고 내성을 키울 수 있으며, 그러한 물질이 지속적으로 몸에 공급되지 않아도 금단 현상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오남용의 우려가 있는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신중한 사용을 법제화하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오남용 정도나 위해도, 의료용 사용 여부에 따른 위험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취급 방법에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마약 중독이 사회적 이슈가 된지 오래된 미국의 경우는 식품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에서 ‘스케줄 약물(scheduled drug)’이라는 분류 체계를 두어 위험성에 따라 등급을 로마자 숫자 I부터 V까지의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각 등급별로 취급 방법을 다르게 하여 안전성을 확보하고 관리 효율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의료용 마약류 위험도의 이해를 돕는 미국 식약처의 스케줄 약물

스케줄 약물의 분류를 살피면 의료용 마약류의 위험도를 직관적으로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스케줄 I 약물이 중독성이 가장 강력하고 스케줄 V 약물로 갈수록 중독성이 약하다. 스케줄 I 약물은 의학적 유익성이 없는 마약 그 자체이다. 스케줄 II 부터 V까지의 모든 약물은 특정 상황에서 의학적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며 의사면허증을 가진 의사들만이 처방을 할 수 있다. 스케줄 I 약물은 헤로인, LSD, 액스터시, 마리화나 등이 있다. 스케줄 II 약물에는 대부분의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가 포함된다. 모르핀, 코데인, 하이드로코돈, 메타돈, 옥시코돈, 펜타닐 등이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도 이에 속한다. 

스케줄 III 약물에는 부분적인 오피오이드 작용을 하는 부프레노르핀, 항우울제 신약으로 주목받는 케타민 등이 있다. 스케줄 IV 약물에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예: 로라제팜, 디아제팜, 알프라졸람, 클로나제팜, 트리아졸람, 브로마제팜, 플루니트라제팜 등), 졸피뎀과 같은 수면진정제, 식욕억제제 펜터민, 정맥주사용 마취유도제인 프로포폴 등이 포함된다. 트라마돌과 같은 약한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도 이에 속한다. 스케줄 V 약물은 주로 제한된 양의 오피오이드를 함유한 제제로 100mL당 200mg 이하의 코데인을 함유한 기침약이 이에 해당한다.2)


한국의 의료용 마약류 실태 통계

지난 2023년 7월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2022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 현황 통계’를 발표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환자는 전 국민 중 1,946만 명(중복 제외)으로 전년 대비 62만 명(3.3%)이 증가했다. 이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으로 관련 통계를 수집한 2018년 이후 역대 최다 수치를 기록했다. 효능별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 수는 마취제(1,122만 명), 최면진정제(928만 명), 항불안제(641만 명), 진통제(312만 명), 항뇌전증제(124만 명), 식욕억제제(121만 명), 진해제(65.6만 명), ADHD치료제(22.1만 명) 순으로 많았다. 연령별로는 50대가 21.0%(406만 명)로 가장 많았으며 뒤를 이어 40대 19.9%(384만 명), 60대 19.3%(374만 명), 30대 12.5%(243만 명), 70대 10.6%(204만 명), 20대 7.5%(146만 명), 80대 이상 6.0%(116만 명), 10대 이하 3.2%(61만 명) 순이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의료용 마약류인 마취제는 프로포폴이나 미다졸람이 건강검진 등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 중 적지 않은 수가 의료용 마약류에 노출되고 있다. 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특성에 대해,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과 중독 가능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알 권리가 얼마나 진료 현장에서 보장되는지 의문이다.3)


임상 현장에서 만난 의료용 마약류 처방 사례

정신과 의사로서 의료용 마약류 처방을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접한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는 수면유도제 졸피뎀이다. 불면증을 경험하는 환자분들 중 상당수가 내과, 가정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손쉽게 졸피뎀과 같은 수면유도제를 처방받는다. 졸피뎀의 약전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약의 최대 치료 기간은 4주이고 치료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의존성과 남용 위험성이 증가한다. 10년간 6천여 명의 국가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대만의 연구에서는 졸피뎀을 고용량·장기간 사용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발생률을 살필 수 있다.4)

항불안제 처방도 상당하다. 긴장, 불안 증상이 있는 경우에 항불안제는 정신과뿐만 아니라 신체질환을 담당하는 여러 과를 통해 심심치 않게 처방된다. 어지럼증에 대해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되기도 하고, 신경성 소화불량에 대해 내과에서 처방되기도 한다. 근육 이완의 효과를 기대하고 정형외과에서 처방되는 사례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모든 의료용 마약류가 그러하듯 항불안제 또한 장기 사용 시 의존성과 갑작스러운 중단 시 금단 현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 중 이 약을 처방받은 대부분이 약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과 교과서에서는 항불안제의 적용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고, 불안의 다른 의학적 원인이 있는지 살펴야 하며, 사용하게 되더라도 낮은 용량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약의 진정 작용 및 남용의 위험성에 대해 복용 시작 때부터 함께 얘기 나누어야 하고, 예측되는 처방의 기간을 치료 시작 시점에서 함께 살펴야 하며, 장기 사용 시 한 달에 한 번은 지속 치료 필요성을 재평가해야 한다.5)

마약성 진통제의 처방도 종종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진행성 암 환자의 극심한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가 처음 적용되었다. 하지만 차차 그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스케줄 II 약물로는 옥시콘틴과 같은 경구 약물도 있고, 펜타닐 패치 같은 몸에 붙이면 피부를 통해 서서히 흡수되는 약물도 있다. 일반적인 진통제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통증 질환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를 넘어 국내에는 신경병성 통증, 하부요통, 만성 췌장염 등으로도 적응증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의존성과 금단 현상, 과다 진정의 부작용의 가능성 때문에 처방 전, 부작용을 설명하고 위험과 이득의 저울을 재어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국내에서 위험성이 간과되지만 스케줄 IV 약물 중에 트라마돌도 약한 마약성 진통제에 해당한다. 국내에서는 경구제로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비마약성진통제와 트라마돌의 복합제(원제품의 상품명은 ‘울트라셋’이다)가 시판되고 있다. 진료실에서 만난 노인, 발달장애인에서 과다 진정 부작용을 목격하여 복용 중단을 권유한 경우도 있었다.

타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던 환자 중 치료에 대한 다른 의견을 구하기 위해 진료실로 내원하는 경우도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20대 수험생으로 ADHD 진단을 받고 ADHD약으로 알려진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하기 시작한 사례였다. 하지만 복용 1달 만에 환청이라는 부작용이 생겼다. 환청 증상을 완화하는 약과 ADHD약을 함께 복용했지만 환청은 지속되었고, 게다가 학업에 대한 욕심으로 하루 1~2알 복용하기로 했던 ADHD약을 6~7개까지 복용하기도 했다. 결국 환청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대학병원 진료를 통해 조현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지속해서 받게 되었다. 이 사례의 환자분의 경우에는 다이어트약 펜터민을 함께 복용하며 환청 증상이 더욱 크게 악화되는 경험이 있기도 했다. 메틸페니데이트와 펜터민은 모두 향정신성의약품이고 정신신경계 부작용과 남용의 위험성이 있음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

코데인이라는 기침 억제 효과가 있는 마약성 성분을 함유한 시럽 제제도 처방을 통해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기침의 원인을 없애는 약이 아닌 기침을 덜 나오게 하는 조절제이다. 유·소아뿐만 아니라 성인, 고령자에게도 흔히 처방된다. “그 감기약이 잘 듣더라.” 하면서 콕 집어 코데인 함유 시럽제 처방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다. 진료 현장에서 이런 약 또한 의료용 마약류라는 약의 특성에 대해 가급적 설명하려고 한다. 이런 약물들 또한 의존성과 남용위험성이 있을 수 있고, 본인도 모르게 반복해서 찾을 수 있음을 의료 소비자들이 알아야 한다.


달리 해야 할 약에 대한 인식

우리는 아플 때 약을 찾는다. 병을 낫게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을 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서두에도 전했듯이 모든 약은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의료용 마약류의 부작용은 의존성, 중독성이다. 중독정신의학을 전문 분야로 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중독의 예방에 대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의 경험은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중독성이 있는 약물로 인한 감각은 애초에 경험하지 않는 것이 오남용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말이다. 의존성이 있을 수 있는 약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사용해야 한다면 있을 수 있는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의사와 환자가 함께 견주어 이득이 위험성을 초과할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 옳다. 특히 의존성이 있을 수 있는 약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질병에 대한 치료제라기보다는 힘든 상태를 조절하는 증상 조절제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참된 의미의 국민 건강권을 지킨다면 짧은 시간 안에 약을 통해서 모든 증상을 없애주기보다는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비약물적으로 환자의 생활 습관 개선을 도모, 독려하고 동시에 비마약성 약물이 우선적으로 처방되는 의료 문화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상 모든 과 의사들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수 있기에 의학 교육의 과정에 중독성 있는 약물에 대한 주의점, 중독 치료의 방법에 대한 내용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 앞서 의료용 마약류 통계 실태에서도 살폈지만, 대한민국 국민 천 만명 이상이 의료용 마약류에 노출되어 있다. 이미 의존성이 있는 약물에 노출된 인구들이 상당 수 이기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처벌 위주의 의료용 마약류 관련 법 제정보다 이미 노출된 경우에 어떻게 지혜롭게 덜어갈 지에 대한 고민과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의료용 마약류 사용의 신중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캐나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스케줄 약물로 분류되는 의료용 마약류의 감량 혹은 중단 전략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아래에 요약한 미국 보건복지부(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의 ‘장기 사용 오피오이드 진통제의 적절한 용량 감소 및 중단에 관한 가이드라인’ 내용을 참고하면 이미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를 어떻게 덜어갈 지에 대한 실제적인 실천에 도움이 될 것이다.6)


장기 사용 오피오이드 진통제의 적절한 용량 감소 및 중단에 관한 가이드라인

미국의 경우 연간 오피오이드 진통제 처방량이 2017년에는 1억 9,100만 건에 달한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기본적으로 처방의 이득이 위험성을 웃돌 때만 오피오이드 진통제의 처방을 고려하는 것이 환자 한 명 한 명에게도, 전체 공중보건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동시에 용량의 증량, 감량, 처방 중단 혹은 장기간 사용을 신중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협력적으로, 용량을 잘 살피며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마약성 약물이 통합되어야 하고 통합적인 의료팀 안에서의 협력이 중요하며, 이런 조율의 과정에 의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환자를 포기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다음의 경우에는 용량의 감량 혹은 중단을 고려해야 한다

  • 통증이 호전될 경우
  • 환자가 용량의 감량이나 중단을 요구할 경우
  •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를 사용함에도 의미 있는 통증이나 기능의 회복이 되지 않는 경우
  • 환자가 고용량의 이득에 대한 근거 없이 높은 용량을 투여받고 있을 때
  • 환자에게 오피오이드 오남용의 조짐이 보일 때
  • 부작용 발생으로 인해 삶의 질이 저하될 때
  • 벤조디아제핀과 같은 약물을 복용하고 있거나 폐질환, 수면무호흡, 간질환 등의 의학적 상태로 인해 이상 반응 발생 확률이 높을 때
  • 위험-이득의 견줌 없이 수년 이상 장기간 투여될 때 

신중한 상의 없이 환자 홀로 약물을 중단할 경우, 급성 금단현상, 통증의 극심한 악화, 불안, 우울, 자살사고, 자해, 오남용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 과정은 상의를 토대로 주의 깊게 진행되어야 한다. 환자와 감량의 과정을 만들어 갈 때는 신체 기능을 높이고 통증으로 인한 고통을 줄여가는 방향성을 갖고 진행한다. 가용한 비약물적 방법과 비마약성 진통제를 함께 활용하는 방안을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치료 관계를 잘 확립해야 한다. 동반된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함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정신과 진료와 연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날록손(naloxone)과 같은 해독 약물을 같이 활용해볼 수도 있다.

이런 약물 감량 및 중단의 진행 과정은 ‘함께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을 토대로 한다. 의사는 질병과 치료 이론의 전문가이고, 환자는 질병 경험과 치료 경험의 전문가이다. 이 둘이 치료 과정 안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치료를 진행한다면 환자 당사자에게 더욱 도움 되는 좋은 치료를 함께 경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하는 의사결정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사는 환자와 함께 오피오이드 약물 치료가 지속될 때의 위험, 유익,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인식을 살피고 환자의 우려를 감량 계획에 포함한다. 지금의 오피오이드 용량으로 인해 환자가 당장 큰 위험에 처하지 않는 경우 즉시 감량할 필요는 없다. 환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 상의하고 숙고할 시간을 가지라. 약물 용량을 줄이는 데 환자가 동의하는 경우 협력하여 감량 계획을 세운다. 함께 할 때 성공 확률이 높다. 어떤 약물을 먼저 줄이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감량할지의 결정에 환자를 참여시킨다. 

환자는 약물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줄여갈지 궁금할 것이다. 환자의 삶의 질이 중요하기에 오피오이드 금단 증상을 최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감량해야 한다. 환자의 목표와 염려에 따라 감량 계획은 개별화해야 한다. 오피오이드 약물 복용 기간이 길수록 줄여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4주마다 5~20%의 용량 감소를 해나간다. 1년 이상 오피오이드 약물을 사용한 경우에는 한 달에 10% 이하의 느린 감량을 할 때 환자들이 더 잘 버틴다. 환자가 힘들어하는 경우 감량을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기간에는 통증 및 정서적 고통의 관리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새로운 용량에 몸이 적응할 시간을 허락한다. 과다 복용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처럼 오피오이드 지속의 위험이 감량의 위험보다 큰 경우 환자의 안전을 위해 좀 더 빠른 속도(4주보다 조금 짧은 기간은 2~3주에 걸쳐)로 감량을 진행할 수도 있다.

위의 ‘장기 사용 오피오이드 진통제의 적절한 용량 감소 및 중단에 관한 가이드라인’ 내용은 오피오이드 진통제 외에도 다른 의료용 마약류인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 졸피뎀과 같은 수면진정제 등을 줄여갈 때에도 참고해볼 만하다. 정신과 의사인 나의 경험을 조금 나누고 싶다. 다른 정신과에서 과량의 여러 항불안제를 장기간 처방 받다가 약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이 종종 있다. 이런 경우 기본적으로는 약의 의존성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가 느낀 약의 효과와 부작용, 장점과 단점에 대해 소통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약을 줄여가는 큰 그림을 먼저 그린다. 구체적 실천으로는 3~4주에 걸쳐 전체 항불안제 용량의 10~20%씩 낮추어 가면서, 의존성의 이슈가 크게 없는 비마약성 항우울제를 소량 병용하고, 불안에 대처할 호흡 이완이나 신체 이완과 같은 안정화 기법을 함께 익혀가며, 불안을 증상만으로 바라보기보다 현상으로 바라보는 마음에 대한 관점을 달리 갖는 방법들을 적용하고 있다. 생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하루 중에 움직이는 시간과 햇빛 보는 시간 늘리기, 적절한 수면 시간 챙기기 등을 환자분들과 함께 실천하는 것도 부가적인 도움이 된다. 벤조디아제핀 중단의 필요성과 실제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토대로 한국정신신체의학회에서 발간한 ‘벤조디아제핀 중단 매뉴얼’에도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 중단에 대한 실제가 잘 기술이 되어 있다.7)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처벌 위주의 정책보다 함께하는 의사결정

지난 2023년 11월에 정부는 제7차 마약류대책협의회를 통해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의료용 마약류 관리체계 개편이다. 의사의 처방 투약 금지 기준을 강화하고, 처방 시 환자 투약 이력 확인을 의무화한다. 의료용 마약류를 목적 외에 투약·제공하는 경우 자격정지 1년을 부과한다고 한다.8) ‘의료용 마약류 투약 이력 확인 의무화 제도’가 2023년에 입법되어 2024년 시행 예정이다. 이는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마약류를 처방받는 ‘의료 쇼핑’을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고 알려졌다. 투약 이력 확인의 의무 위반 시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9)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마약류 관리에 대해 처벌 위주의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의료용 마약류의 사용에 있어서 의존성과 남용 위험성이라는 특성이 있음을 알고 위험과 이득을 견주어서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8년 영국 보건부에서는 “No decision about me, without me(나에 대한 의료적 선택이 나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라는 캠페인을 시작한다.10) 환자들이 자신의 의료적 의사결정에 스스로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과 사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의료용 마약류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노출되는 시간 속에서 이 약에 대한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 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노출될 경우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질 수 있다. 가급적 의료용 마약류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생활 관리와 비마약성 약물 및 치료의 도움으로 삶의 질을 높일 전략이 중요하다. 이미 의료용 마약류에 노출이 되었더라도 앞서 공유한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차차 줄여가는 노력을 의사와 환자가 함께 해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함께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이다. 

| 각주 |

1) Benjamine James Sadock, Virginia Alcott Sadock, Pedro Ruiz. Kaplan and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11th edition. Wolters Kluwer(2015)

2) Anna Lembke. Drug Dealer, MD: How Doctors Were Duped, Patients Got Hooked, and Why It’s So Hard to Stop.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2016)

3) 식품의약품안전처. 「2022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 현황 통계」 2023-7-19

4) Cheng, H. T., Lin, F. J., Erickson, S. R., Hong, J. L., & Wu, C. H. (2017). The Association Between the Use of Zolpidem and the Risk of Alzheimer’s Disease Among Older People. 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 65(11), 2488-2495

5) Benjamine James Sadock, Virginia Alcott Sadock, Pedro Ruiz. Kaplan and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11th edition. Wolters Kluwer(2015)

6) The U.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Working Group on Patient-Centered Reduction or Discontinuation of Long-term Opioid Analgesics. HHS Guide for Clinicians on the Appropriate Dosage Reduction or Discontinuation of Long-Term Opioid Analgesics(2019)

7) 한국정신신체의학회. 벤조디아제핀 중단 매뉴얼(2021)

8) 한겨레. 「처벌 위주 ‘의료용 마약류’ 관리, 국민건강 위협한다」. 2023-12-8

9) 의사신문. 「마약류 투약이력 확인 의무화 임박… 의료계 우려 커져」. 2024-1-18

10) UK Department of Health. Liberating the NHS: No decision about me, without me(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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