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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띄우는 편지]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정신보건의 새 기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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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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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정신보건의 새 기준이 필요하다

[주장] 앞으로의 정신보건 정책, 환자 마음 뿐 아니라 삶 전반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해야

[2020년 4월 13일 오마이뉴스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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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느티나무의원


글을 쓰려고 두 딸과 다니는 교회 근처 공원에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먼발치에서 서로 재잘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벚꽃잎 하나가 제 노트북 자판 위에 살포시 앉네요. 봄이 오긴 왔나 보다 하는 따뜻한 생각을 잠시 품고, 꽃을 자리 옆에 살포시 내려다 놓고서 다시 자판을 붙잡습니다.

봄이지만 밖에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이 많진 않습니다.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우리들 일상의 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낭만적인 얘기만 이어가기엔 코로나19의 영향이 너무나도 큽니다. 어느덧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묵직하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그중 정신보건 영역은 특히나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4월 13일 현재,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되었던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는 코로나19의 확진자가 120명이 나왔고, 이 중 아홉 분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한국 첫 사망자 사례가 대남병원에 20년 이상 입원해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정신과 입원 시설과 요양병원이 함께 있는 대구 달성군 제2미주병원에는 확진자 191명이 나왔습니다. 국내 병원 내 집단감염으로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이들 중에서는 세 분이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신병원 집단 감염 사례에서는 공통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좁은 폐쇄 병동에 환자가 몰려있었다는 점, 환기가 잘 안 되는 공간이라는 점, 환자의 상당수가 기저 질환을 앓고 있었고 면역력이 약했다는 점 등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과연 정신병동에서 집단감염사례가 이다지도 많이 발생하는 것이 우연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오마이뉴스에 <코로나19 소식에 너무 몰두하지 마세요> 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에 신체건강 돌보기가 곧 마음건강 돌보기이고, 마음 건강을 살피는 것이 신체건강을 챙기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장기입원 환자분들이 다수인 정신병원에서는 몸의 건강을 살피기가 쉽지 않습니다. 폐쇄된 환경으로 인해 하루 한 번 햇볕을 쬐기도 쉽지 않습니다. '병원' 안에 있지만 몸의 상태에 대해 정기적으로 적절한 돌봄을 받거나 관리를 받기 어렵습니다.

지역사회 감염 국면으로 전환된 요즘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병동에서 장기 입원을 감당하신 수많은 전국의 정신장애 당사자분들은 코로나19 한참 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해왔던 분들입니다. 코로나19가 그들의 삶 속으로 침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과연 그분들의 삶에 얼마나 주목했을까요? 그분들을 아프게 하고 돌아가시게 하는 바이러스가 우리들에게도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었다면 폐쇄되고 밀집한, 환기도 잘 안 되는 열악한 환경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 했을까요?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정신보건 영역에서의 뉴노멀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신장애인들의 마음건강만큼이나 몸의 건강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정신보건의 영역에서 혁신을 추구해온 나라는 이탈리아입니다. 1978년 '바살리아법'(Basaglia Law) 제정 후 모든 정신병원의 신규입원을 금지하고, 지역사회 정신보건 체계를 확충해나갔습니다. 지역 정신보건센터가 기반이 되었고, 주거 시설을 확충해갔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지역사회 공동체와 연계하여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합니다. 급성기 정신질환의 치료는 종합병원의 입원 병동에서 담당하여 단기간 몸과 마음의 돌봄을 함께 제공합니다.

청도대남병원과 제2미주병원 사태를 통해 정신장애인의 몸의 돌봄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행히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음압병동이 존재하여 코로나19 경증 감염 환자에 대해서도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과 환자라 해서 정신질환만 고치면 될 것이 아닙니다. 정신과 약을 장기 복용하면 약물의존이 염려될 뿐 아니라 인지기능의 저하, 근육계통의 부작용,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의 발생과 같은 대사장애의 위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시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사회적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적 기능은 저하될 수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감염이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삶은 닿아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의료는 없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컸습니다. 4월 12일 기준으로 확진자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15만2271명이고 사망자는 2만 명이 넘는 미국의 뒤를 이어 1만9468명입니다. 혹자는 공공의료를 추구하는 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졌다고 하며 의료의 공공성 자체를 깎아내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이탈리아의 의료는 공공의 비중이 높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긴축재정으로 인해 의료 관련 예산을 심각할 정도로 삭감합니다. 이로 인해 병상 수, 중환자 병상 수가 줄어든 것이지요. 고령자가 코로나19에 취약한데 고령화 비율은 23%로 세계 2위입니다. 첫 발병 환자의 진단이 늦었던 것도 큰 피해로 이어진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관련 기사: 이탈리아 덮친 코로나, 핵심은 '고령화'가 아니다 http://omn.kr/1mwat)

공공의료의 비중이 크더라도 의료 공공성이 후퇴할 경우 감염병에서 취약할 수 있음을 이탈리아 사례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코로나19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는 공공의료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경증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지역의 공공병원의 음압병동, 대구로 달려간 공중보건의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나름 성공적인 방역을 했다는 세계의 평가를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코로나 2x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를 더욱 촘촘하게 다져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정신보건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11월에 개최된 국제희년재단 심포지엄에서 이탈리아 볼로냐의 정신보건국장인 안젤로 피오리티(Angelo Fioritti) 선생님이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사례를 깊이 있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지역사회 중심의 이탈리아 정신의료가 2008년을 기점으로 의료 중심의 '공동체 정신의료 서비스'에서 전인적 돌봄 중심의 '공동체 정신건강 서비스'로 전환되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때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지난 3월 말 국제희년재단에서 주도하여 이탈리아에 '생명의 마스크 보내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제가 속한 기독청년의료인회도 이에 함께 했었지요. 코로나19의 대처에 관한 도움을 우리나라에서 이탈리아에 줄 수 있었듯이 이탈리아로부터 개혁적인 정신보건 접근 방법을 배울 기회와 계기가 앞으로 많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의료는 없습니다. 다만 더 나은 의료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가 지속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뿐입니다. 더 나은 정신보건, 정신의료의 구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정신질환자들의 회복에 큰 공헌을 한 국립정신건강센터 센터장이신 이영문 선생님의 쿠키뉴스 인터뷰 <"국립정신병원에 음압병동 하나 있을 때도 됐다">를 갈무리하며 글을 마칩니다.

"현 상태로 정신질환 당사자를 놓아두면 안 된다. 그룹홈과 커뮤니티케어 등 당사자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 한 명을 돌보는데 150~200만 원 정도가 든다. 이 비용을 지역사회에 머물 시설로 돌려 환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집단 수용식이 아닌, 소규모 그룹홈에서의 돌봄이 더 효과적이다. 코로나19처럼 향후 또 다른 감염병이 유행할 때, 하나의 시설에 100명이 있는 것과 10개의 시설에서 10명씩 거주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방역에 더 효과적이겠나.

음압병실을 보유한 국립병원이 이번 사태에서 역할이 컸다. 적어도 전국의 국립정신병원에 '음압병동'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음압병동 한 유닛을 만들려면 40~50억 원이 소요된다. 전국 5개 국립병원에 200억 원가량을 들여 음압병동을 조성하려면 200억 원이 필요하다. 시설이 구축되면 향후 또 다른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한 번에 케어 가능한 정신질환 당사자는 100명 이상이다. 추경 예산에 이를 반영하려는 논의가 복지부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정신질환 당사자는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의 내용은 '오마이뉴스(시민기자)', '기독청년의료인회 회보'에도 동시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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